새로운 발흥지 : 2부 포스트휴먼
THE NEW EPICENTER : chapter 2 Post-Human
전시기간 : 2011-10-21 ~ 2011-11-27
전시작가 : 김준, 노상균, 노진아, 낸시랭, 데비한, 박경범, 배형경, 육종석, 이순주, 송상희, 정은영, 조습, 이피, 코디최, 홍성도
초청기획 : 김홍희
포스트휴먼 : 개념과 미학

포스트모던 인간학

포스트구조주의에 입각한 포스트모던 인간학은 통합된 인격과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부정한다. 즉 인간의 본성이 자유롭고 자율적이며 역사나 환경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기존의 인본주의 인간관을 부정하고, 인간 주체를 언어적 구축물, 즉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되는 의미화의 산물로 파악한다. 이렇게 타고난 본성이 부정되고 고정된 정체성이 해체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이 바로‘포스트휴먼’으로서, 이는 인간의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이 분리된 별개의 범주가 아니라 상호소통체계를 갖춘 일관된 신체작용임을 다각도로 입증하고 있는 최근의 인지과학, 조직이론, 신체이론, 정보이론, 컴퓨터 공학, 인공지능 연구에 의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인간 너머의 인간, 또는 인간 이후의 인간인‘포스트휴먼’이 겪고 있는 이러한 정체성의 위기와 함께 새로운 의미로 부각되는 것이 몸이다.‘나’란 무엇인가, 나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몸에서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의 안티테제 또는 그것의 물질적 하부구조가 아니라, 나’를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근거로서 몸을 상정하는 것이다. 몸 자체가 정체성의 소재지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을 육체적인 존재보다는 의식적인 주체로 파악하는 데카르트적 형이상학에 대한 반란이자, 통합된 인격을 상정하는 인본주의 인간관의 전복을 의미한다.

이미 인간을 의식과 무의식의 존재로 양분하여‘무의식=리비도적 욕망=참자아’의 등식을 성립시킨 프로이드는 뿌리깊은 인본주의 인간관에 일격을 가하였고, 의식을 육체적 활동의 추상화 과정으로 인식하는 메를로-퐁티 역시 데카르트의 의식적 자아 대신에 체험된 자아를 상정함으로써 정신/육체 이분법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프로이드는 인간을 의식적인 주체보다는 무의식적 자아로 간주하고, 메르로-퐁티는 인간을 정신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그 양면을 동시에 흡수한 애매모호한 ‘몽상적인 존재’ 또는 ‘야성적인 존재’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인간주의적인 인간관을‘주체는 없다’라는 극한상황으로까지 몰고 간것은 바로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이었다. 정신/육체 뿐 아니라 자아/타자, 중심/주변을 차별화하는 모든 이분법적 사고를 추방하기 위하여 정신활동의 산물인 언어와 의미와 담론을 해체하는 데리다, 라캉과 같은 포스트구조주의 석학들은 인간주체는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축된 비고정적인 범주임을 강력히 주장한다.

포스트구조주의 시각에서 보면 주체만이 아니라 주체가 주거하는 신체 역시 언어적 구축물이다. 신체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즉 비고정적 범주라는 인식과 함께 몸, 섹스, 젠더, 성적 욕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몸을 주체성 담론과 성별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힘과 투쟁의 현장으로 파악하는 몸의 정치학의 대두, 동성애, 변태, 트랜스젠더, 파편적 신체, 대리 신체 등 이제까지 터부시했던 비정상적인 성심리와 성행태에 대해 주목하는 그로테스크, 애브젝션, 언캐니 등의 전복적 신체담론의 등장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이보그

포스트휴먼은 이미 1950년대 인공지능의 기반을 다진 영국 물리학자 알란 튜링의 실험에서 제시되었다. 튜링 인공지능 연구의 핵심개념인‘체현 (신체적 구현, embodiment)의 폐기(erasure)’는 지능이 인간의 근육적, 육체적 실행(enaction, Jerome Seymour Bruner) 보다는 상징의 형식적 속성으로 수행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체현의 폐기 개념은 정보 패턴과 그 형식적 생성을 조성한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고, 여기에 클로드 쉐논과 노버트 위너의 정보 이론이 추가되면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이 구체화, 확대되었다. 

정보는 자연정보에서 문화정보를 거쳐 컴퓨터 시대의 기술정보로 진행되고 있다. 연기, 불길 같이 누가 흔적을 남겼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자연정보의 특징인 반면, 이야기 기술이나 시각 재현으로 대변되는 문화정보에서는 실제와 허구의 구분이 확실하다. 기술정보는 문화정보와 다르게 그 자체의 생명력을 가지는 까닭에 사이버스페이스의 인물이 실제인지 가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들어오면 자기 자신을 정보 기술로 모방될 수 있는 분열된 상투적 페르소나로 환원시킨다. 그리하여 정체성 교란의 공모자가 된다.

기술정보는 그것을 운반하는 기본 물질과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체로 개념화되면서 의미나 형식의 상실없이 다른 물질들 사이를 흐르는 실체 없는 용액으로 상정된다. “매체가 메시지” 마샬 맥루언의 문구를 환기시키는 이러한 정보 자체가 인간의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것이 포스트휴먼의 가설이다. 즉 육체적 실행을 통한 신체적 구현이 아니라 정보 패턴(한스 모라벡)에 의해 인간의 정체성이 구축된다는 것인데, 이는 인간 의식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함으로써 입증된다. 기계가 인간의 능력인 지능적 사고를 한다는 튜링의 주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기계가 인간 의식의 저장소, 즉 기계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이런 논리로부터 사이보그와 인간의 합일이 가능해진다. 실제 실행되는 육체적 몸과 전자 환경에서 언어적, 의미론적 표상을 통해 재현되는 몸이 그 둘을 결합시키는 기술로 연결되는 순간 인간 주체는 인간과 기계의 결합인 사이보그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이보그는 실행된 몸과 재현된 몸의 겹침이 인간 주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정체성의 생산과 얽힌 기술에 의해 중재된 자연적 결과이다. 인간 의지와 욕망을 인공지능 시스템에 연결하고 변형적인 기계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재현된 몸과 실행된 몸을 결합할 때 사이보그적 개입이 일어나며, 이와 함께 계몽주의 이래 인간의 모델로 간주된 자유 주체가 도전받으며 포스트휴먼이 탄생한다.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기표를 응시하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체화된 총체와 동일화할 때 우리는 이미 포스트휴먼이 된다. (N. Katherine Hayles)

이렇게 개념화되는 포스트휴먼은 의식, 이성, 자유의지 등, 주체 의식을 소유한 인본주의적 인간과 다르게 인간 행태를 독립적으로 프로그램화하는 지능적인 에이전트의 자율적이고 결과물로 파악된다. 그러나 에이전트 프로그램이 우연과 사고에 반응하고 인간을 닮은 감정적 계산 기술로 발전하면서, 인간과 기계가 동일화되기 보다는 상호작용하는 인터페이스 인식 시스템으로 재개념화되고 있다. 사회의 조직속으로 직조되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 의해 자연과 문화의 협동, 하이브리드 오브제, 즉 유전 공학적 식물, 동물, 유전데라피의 인간, 사이버네틱 인간, 그리고 진화프로그램에 의한 정보시스템과 유비쿼터스 환경이 가동된다. 

그러나 사이보그 가설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인간은 여전히 체화되고 있으며, 자신의 몸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가상현실 열광자나 공상과학자의 환상과 무관하게 대부분 사람들은 실제 세상에서 실제 삶을 산다. 우리가 몸을 피할 수 없듯이, 현실과 실제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으로 재개념화된 포스트휴먼은 부정할 수 없는 육신과 기계적으로 확장되는 사이보그, 젠더화된 인체와 젠더없는 사이보그, 촉지가능한 현실과 사이버스페이스 사이에서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환경적으로 정체성의 위기를 경험한다.

글. 김홍희  < 새로운 발흥지 : 2부 포스트휴먼 > 전시 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