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발흥지 : 1부 포스트 네이처
THE NEW EPICENTER : chapter 1 Post-Nature
전시기간 : 2011-09-02 ~ 2011-10-09
전시작가 : 강익중, 김상돈, 김주현, 김해민, 김홍주, 문범, 박능생, 박병춘, 박상조, 정주영, 조경란, 홍명섭, 홍순명, 황인기
초청기획 : 김홍희
새로운 발흥지

지역 미술문화의 발전이 중요하고 시급한 상황에서 충북 청주시에 새로운 미술공간 우민아트센터가 문을 여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에 이번 개관전은 우민아트센터가 청주와 충북은 물론, 크게는 한국미술문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뉴 에피센터 즉 새로운 문화 발흥지를 화두로 던진다. 

개관전 <새로운 발흥지>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 주제를 상정하며 1부와 2부로 나누어 구성한다. 자연과 인간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불후의 대주제로,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물론, 문학 ? 음악 ? 미술과 같은 문화예술장르의 최대 화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장 친숙하면서도 여전히 불가해한 자연과 인간을 주제화하되, 이 시대의 자연관과 인간학에 기초한 시의성 있는 화두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과거로부터 연속성과 함께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에서, 또한 전통의 현대화, 현재화라는 맥락에서 이 전시는 새로운 발흥지로서 우민아트센터의 미래적 비전을 제시, 부각시킬 것이다. 

문화와 문명의 권위, 이분법적 사고체계, 일원론, 중심성의 해체로 존재론과 인식론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포스트모던 시대, 이 시대의 자연과 인간은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 그 다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나 여기에 편재하고,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는 자연과 인간에 대해 현대의 사색가들,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개관 기념전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하여 이 시대의 자연과 인간을 자연 너머의 자연, 인간 너머의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포스트네이쳐’와 ‘포스트휴먼’으로 설정하고 각기 1부 <포스트네이쳐>전, 2부 <포스트휴먼>전에서 그 내용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자연과 인간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낯설게 함으로써 다시 보게 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자성적 성찰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한다.


I. 포스트네이처 : 개념과 미학

생태중심주의 자연관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에 대한 본질주의, 사실주의, 객관주의, 단일주의, 과학주의 입장을 떠나 비본질주의, 생태주의, 상대주의, 복수주의, 해체주의 입장을 견지한다. 소서사, 타자, 주변부, 무의식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고취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와 함께 비이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합리적 사회로부터 추방되었던 복수적이고 상대적인 사고와 삶의 방식이 재조명, 부활되고, 이와 함께 자연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도 근원적 변화가 요청되었다. 존재론적 사실주의, 인식론적 객관주의가 아니라 상대적 복수주의에 근간한 자연관, 그것은 기존의 철학이나 과학으로는 그 해석이 불가능한, 보편적 진실이나 선험적 지식과 무관한 윤리적, 정치적 차원의 자연에 관한 것이다.   

윤리적, 정치적 차원의 자연은 반인류중심주의 또는 탈인류중심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연을 의미한다. 인류중심주의는 자연을 본연의 가치보다는 인간을 위한 도구적 효용가치로 오용 ? 남용한다. 프로메테우스적 기술, 문명 숭상이 유용한 것을 길들이고 나머지를 파괴하는 자연에 대한 폭력을 낳고,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태고적 믿음이 인종차별, 성차별을 병행하여 인간/비인간을 구별하는 ‘종’차별주의를 아직까지 유지시키고 있다. 생태중심주의 자연관은 오만한 인간성과 인본주의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이에 입각한 인식론과 윤리학은 인간뿐 아니라 인간이 생태적으로 처한 자연에 유념하며 자연 역시 ‘인간과 함께’ 라는 상호호혜적 가치를 중시한다. 관계의 네트워크를 인간세계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 이상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생태중심주의는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복수적이고 상대적이고 개방적이다. 

생태중심주의, 복수주의 생태학에 입각한 환경/녹색 담론은 자연이 인간에 의해 마음대로 발명되거나 생산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자연과 문화 (문명을 포함하는) 모두를 재고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서양 담론에서 자연과 문화는 상호의존적이면서도 대립적인 이분법적 관계항으로 파악된다. 이는 자연이 문화에 의해 구축/발명되거나, 문화가 자연에 의해 생산되거나 간에 자연과 문화가 주어진 것이라는 본질주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모더니즘 합리주의로 계승된 이러한 본질론적 이분법은 신자유주의 산업화에 따른 글로벌 생태위기에 직면하여 포스트구조주의에 입각한 탈이분법적인 복수생태학으로 대치되고 있다. 

자연과 문화를 본질이 아니라 구축물로 파악하며 생태중심주의 세계관에 공감하는 현대의 사상가들은 기존 문명, 정체된 문화, 고착된 재현의 퇴거를 요구하며 오염되지 않은 공백 위에서 문화와 자연이 다시 만날 것을 제안한다. 타자를 향한 문명과 문화의 비움, 탈재현적 재현의 전략을 통해 자연을 너머서는, 자연 이후의 ‘포스트네이쳐’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관계로 맺어지는 자연과 문화의 만남으로부터 포스트네이쳐 미학이 도출된다. 그것은 자연과 문화를 상호적 반영관계로 파악하는 고전주의나 양자를 적대적 대칭관계로 간주하는 모더니즘과는 다른, 문화가 자연의, 자연이 문화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윤리적, 대안적 모델로 제시된다.

알레고리 풍경화

포스트네이쳐 미학은 그것의 시각화 과정에서 은유와 환유의 수사학으로 알레고리를 등장시키며 기존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재현으로부터 거리를 취한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모든 재현은 그것이 리얼리티의 제시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사실적, 비자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주의 풍경화와 같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할 경우에도 그 대상은 사실 ? 현실과 차원이 다른 인공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공성은 화가가 일차적 자연에 의존하면서 그것과 구별되는 이차적 자연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에 개입하게 되는 자의성, 바꾸어 말하자면 자연적 리얼리티와 작가 개개인 사이에 수립된 시각적 협정으로부터 유래되는 인공성을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재현은 그리는 주체와 그려지는 대상 사이에 구축되는 관계적 형성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상력, 특정 감흥이나 무의식적 욕망으로 모방적 재현을 회피하는 비사실적 풍경화, 예컨대 표현주의나 상징주의 계열, 특히 형식적, 내용적 절충주의를 표방하는 포스트모던 풍경화 경우, 재현의 인공성은 자연적 리얼리티의 변형, 초월, 가장을 통해 알레고리의 차원으로 이행하게 된다. 현실이 이미 재현, 이미지, 기호로 존재하지만, 그것이 변형, 초월, 가장된 재현에서는 진실과 사실이 추방되고 내용과 의미가 박탈되며 그 자리에 다른 차원의 리얼리티, 즉 은유와 환유가 들어선다. 은유와 환유는 각각 혼성모방적 ‘파스티셰’, 해체주의적 ‘텍스트성’에 관계되는 포스트모던 수사학의 골자들로, 이를 통해 모더니즘이 기피했던 리얼리티가 알레고리의 옷을 입고 부활된다.

알레고리는 기본적으로 설화, 신화, 성서의 해석을 위해 비유적 수사로서 시각예술에서 중요한 주제적, 양식적 범주를 만들어 왔는데, 이것이 형식주의 모더니즘으로 잠시 후퇴하였다가 포스트모던 페인팅에서 새로운 창작의 추동력으로 부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내재한 은유와 환유, 차용, 파편화, 해체, 반복, 복고의 특성이 알레고리의 그것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까닭에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페인팅은 알레고리 페인팅으로 동일시되며, 자연을 대상화하는 포스트모던 풍경화는 알레고리 풍경화로 범주화된다.   
알레고리 페인팅은 과거를 현재로 재생시키려는 복고적 충동으로 고전 이미지를 차용한다.고전 작품 뿐 아니라, 인류 문화유산을 기념비화 하고 일시성을 영속화 하는 명소의 기록사진, 관광지 풍경 사진 역시 그 자체가 은유와 환유로 작용하면서 알레고리 페인팅에 모티프를 제공한다. 알레고리는 또한 단편적, 파편적인 것을 총체로 완결시키려는 재창조 의지를 갖는다. 동일 단위를 반복하거나 부분의 병렬적 배치로 구성되는 수열적 작품에서 부분의 범례로 전체를 해독시키는 환유적 알레고리가 발견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해석학이 아니기 때문에 원형 이미지나 원래적 의미를 보전하지 않고 은유와 환유를 통해 이미지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킨다.

알레고리는 결국 의미를 고갈시키는 일차적 행위와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이차적 행위로 구성되는데, 그것은 시각적인 것에서 언어적인 것, 도상적인 것에서 텍스트적인 것으로의 진입을 뜻한다. 이 진입의 과정에서 창작자와 감상자, 작품과 관객의 인터랙션이 발생한다. 보충으로의 관객, 상호주관적 소통의 주체로서의 관객의 능동적 독해를 통해 작품이 완결된다는 것이다. 포스트네이쳐 개념과 미학을 시각화, 도상화시키는 알레고리 풍경화의 언어적, 텍스트적 작용과 그 의미를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 김홍희  < 새로운 발흥지 : 1부 포스트네이처 > 전시 서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