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적 멜랑콜리 : 향토적 서정주의
Collective Melancholy
전시기간 : 2012-09-06 ~ 2012-10-13
전시작가 : 강호생, 김준권, 손부남, 신재흥, 박영대, 윤덕자, 이종국, 이홍원, 정봉길, 정창훈, 한영희
2012 주제기획 '충북연구와 미술'


집합적 멜랑콜리(Collective Melancholy)’는 <충북연구와 미술> 이란 주제로 우민아트센터에서 2년마다 한 번씩 진행될 주제기획전의 첫 번째 이름이다. <충북연구와 미술>은 지역 작가를 초대하는 형식적인 그룹전이 아닌, 충북지역의 맥락에 대한 미술계의 지형도를 그려가면서 현황과 가능성을 찾아 가는 주제를 갖는다. 

'집합적 멜랑콜리‘는 뒤르켐의 현대 사회학에서 차용했다. 집합적이란 의미는 숫자적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모였다는 의미와 함께, 작가라는 주체가 다중적인 정서를 지닌다는 의미다. 멜랑콜리는 우울이란 인간의 기본 감정과 함께, 상실된 대상을 회복하려는, 기존의 전형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타자성을 창출하는 전략의 의미이다. 

‘집합적 멜랑콜리’가 관통하는 지점은 포스트-향토주의다. 한국근대미술사에서 향토주의는 아이러니이다. 1930년대 조선향토색 논쟁은 일제 시대 조선이란 고유성에 대한 성찰인 동시에, 조선미전의 제도 미술을 위한 아카데미즘을 보여주는데, 동시대 한국 미술계에서 지역성의 논의는 여전히 이러한 맥락 안에 놓여 있다. 향토성은 지역성과 특수성에만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적 공동성과 보편성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한다.   

향토주의는 미술계에서 소수영역이나 아마추어리즘으로 여겨지거나, 소재적 전형성으로만 비평되기도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적 신자유주의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역성과 향토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비평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향토주의에 대한  후기(late), 反(anti), 너머(beyond)  의 관점을 가진 작가들의 작업으로 동시대적 지역성과 향토성에 대한 인지적 지도그리기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포스트-향토주의에 대한 재조명은 인터-로컬(inter-local) 뮤지엄으로서 우민아트센터가 지역문화예술에 대한 건강하고 창의적인 담론 형성의 장으로 움직이려는 상상과 실천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초대 : 9월 6일 목요일 오후 6시


프로그램

우민특강  9월 22일 토요일 오후 2시
      향토적 서정주의의 전개 : 조선 향토색 논쟁을 중심으로
      최열(김종영 미술관 학예실장, 前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

작가와의 대화 : 크리티컬 테이블
      9월 18일 화요일 오후  2시 이홍원
      9월 20일 목요일 오후  2시 이종국
      9월 25일 화요일 오전 11시 정봉길
      9월 25일 화요일 오전  3시 김준권
      9월 27일 목요일 오후  2시 손부남
    10월  4일 목요일 오후  2시 정창훈
    10월 11일 목요일 오후  2시 신재흥

리서치 라이브러리 전시 및 작가 관련 자료


기획의도


새로운 리얼리즘을 향한 집합적 멜랑콜리


“ 진실이 최상의 것이며, 그 다음이 아름다움이다. ”
“ 화가들은 미학을 찾으러 산으로 달려가지 않고 도시에서 삶을 둘러싼 현실을 탐구한다.
(중략) 이들이 그려내는 것은 진실의 상징이며 도래할 새로운 사회의 명확하고
올바른 기초를 제공한다.“
                                                                                                      S. 수조요노

이번 전시 <집합적 멜랑콜리>는 ‘충북연구와 미술’이란 주제기획 아래, 미술과 동시대적 리얼리티의 관계를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미술의 상상과 실천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지역 미술의 인지적 지도 그리기는 주요한 방향이자 문제틀이었기에 지난 일 여년간 여러 전시회와 자료들을 조사하며 잡은 소주제가 지금, 여기 작가들이 해석하고 있는 ‘향토적 서정주의’의 지형도이다. 이것은 지역성을 물리적?영역적 기반으로 할 때 마주하는 향토성과 서정성이 동시대적 관점에서 드러나는 지점을 확인하고, 향토적 서정주의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의 지점을 함께 고려하기 위함이다.

많은 작업들이 지역적 혹은 자연적 소재의 재현적이고 구상적 조형과 향토적이고 서정적 정서로 묶을 수 있었는데, 이는 미술사적으로는 조선향토색 논쟁과 미학적으로 리얼리즘의 개념과 연결지어 보았다. 1920년대 조선향토색 논쟁은 이중 구조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일제 식민지의 문화정책에 따라 조선을 하나의 이국취향으로 보며 조선미술전람회의 소재적 전형성을 따르는 아카데미즘을 만들어 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이란 고유성과 특수성의 맥락에서 로컬리티locality에 대한 대안적인 예술 실천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2012년 현재, 그대로 혹은 변형되어 지속하고 있기에 향토성은 지역성과 특수성으로 전형화하지 않는, 동시대적 재인식이 필요하다.

리얼리티reality의 미학적 개념은 인도네시아 근대미술의 상징인 수조요노의 리얼리즘realism에서 찾았다. 그의 리얼리즘은 형이상학적 가치보다 사회적 태도로서의 리얼리즘이 추구해야 할 방향을 보이는데, 리얼리즘을‘외형적으로 사실적’인 의미로 한정하기 보다,‘진실의 담지자’로 실제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포함한다. 여기에 서양의 객관적 리얼리티 개념이 아닌, 비-물질세계에 대한 정신성 강조로 본질에 침투하는 사실적 태도를 강조한 동양의 리얼리티가 있다. 11명의 작가들이 다루는 매체는 달랐지만, 대부분 이러한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공통성의 발견이다.

11명의 작가의 작업과 활동은 상반되기도 하고 중첩되기도 하고 유사하기도 하다. 작업의 제작 과정은 작가들의 지각된 리얼리티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선택에 따라 달랐지만, 전통적인 오래된 가치와 현대적인 새로움의 조화는 공통적이다.

강호생은 수묵이란 전통 회화의 태도와 기법 그대로를 지향하며 일상적 풍경이란 실제를 담는다. 보이는 현실 너머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여백으로 이야기되는 기氣를 포착하려는 것은 동양적 리얼리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김준권이 전통 수묵 판화로 재현하는 자연은 특수성과 지역성을 넘어선 보편과 공통의 자연으로, 관조적이고 고즈넉한 형식 아래 현실적인 것으로서의 사실을 드러내려는 부분은 민중미술에서의 사회적 반영과 연결 된다.

박영대는 오래 기간 동안 보리의 재현을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개해오면서, 향토적 소재가 고향과 향수, 생명과 주체, 우주이자 시학으로 다양한 의미로 전개 될 수 있다는 것을 최근까지의 창작 열의로 보여주고 있다.

손부남은  암각화가 가진 원시성에서 인간의 공동성을 발견하는데 선적인 드로잉에서는 개별적 이야기를 질감이 강조된 마띠에르에서는 보편적 정서를 드러내며, 자연에 대한 동양적 사유를 담으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려는 시도 중이다.

신재흥은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데, 농촌 지역의 시? 공간 속 사람들에 대한 에쓰노그래피Ethnography적 접근의 작업들로 지역성에 대한 미술의 구술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윤덕자는 경험적이고 일상적 자연을 수묵채색으로 소박하고 담담한 형식으로 그렸는데, 무엇보다 자체 화실을 통한 교육 활동을 꾸준히 한다는 것은 대안적 제도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지점이다.

이종국이 한지의 생산과 유통을 위해 지역 공동체와 협력하고 있는 상황은 예술이 일상 생활과 실질적으로 어떻게 관계맺음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한지의 전형적 활용을 넘어 설치로서의 확장을 꾀한다.

이홍원은 한지를 이용한 부조와 금속 공예적 색채가 특징인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운 작업과 등산의 경험을 상상적으로 재조합한 거대한 산맥의 4계절 작업으로 한국적 리얼리즘의 현재적 모색을 고민하고 있다.

정봉길은 수채화라는 다소 서정적 매체가 가진 물성의 전형을 깨는 짙고 무거운 채색으로 그로테스크까지 한 분위기를 주는 다른 풍경을 제시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가며 자연에 다가가는 일상을 살고 있다.

정창훈은 나무라는 물질적 사실에 대한 관조적 태도를 드러내는데,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순수한 기억과 추억은 자연과 연결되어 나지막한 신실함을 담고자 하는 작업의 맥락과 소박하게 만나고 있다.
한영희는 천연 염색을 민화에 시도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체 연구소와 갤러리를 통해 민화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실제적 유통을 위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북 미술계의 다양성과 활동성을 위해 중요한 지점이다.

향토주의는 미술계에서 소수영역으로 머물거나, 소재적 전형성으로만 비평되기도 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적 신자유주의에서 진정한 의미의 지역성과 향토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기-비평이 필요하기도 하다. 전시에서 향토성은 또 다른 이름의 지역성이기도 하고 서정성은 또 다른 이름의 보편성이기도 하다. 이 양자 어느 한쪽에 머물지 않고 경계의 전략을 가지는 것이 새로운 리얼리즘이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작가들이 ‘자연’을 이야기하지만,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동양적인 ‘자연’에 대해 다른 ‘너머’의 가능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발견할 수 있을까. 향토적 서정주의에 대한 작가적 전략은 후기late, 反anti, 너머beyond가 혼재되어 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적 리얼리즘에서 비-물질세계에 대한 조형적이고 매체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아우라와 같은 정신성을 강조하는 것을 동시대적 상상과 실천으로 넘어서는 향토적 서정주의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집합적 멜랑콜리Collective Melancholy‘는 뒤르켐의 현대 사회학에서 차용했다. 집합적이란 의미는 숫자적으로 여러 작가의 작품들을 모였다는 의미와 함께, 작가라는 주체가 다중적인 정서를 지닌다는 의미다. 멜랑콜리는 우울이란 인간의 기본 감정과 함께, 상실된 대상을 회복하려는, 기존의 전형성을 파괴하고 새로운 타자성을 창출하는 전략적 의미이다. 과거와 현재적 사실을 직시하고 지역 미술계의 현실을 부정하기 보다, 예기치 못한 것을 기다리는 태도와 정서가 집합적 멜랑콜리라 할 수 있다.

글. 채은영(우민아트센터 학예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