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함에 어루만지다
전시기간 : 2015-10-21 ~ 2015-12-26
전시작가 : 손부남
2015 기획초대
일시 : 2015 년 10월 21일 수요일 - 12월 26일 토요일
        10월 오전 10시 - 오후 7시, 11월-12월 오전 10시 - 오후 6시
        매주 일요일 휴관

초대 :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5시

프로그램 : 작가와의 대화 10월 28일 수요일 오후 3시

후원 : 우민재단

문의 : T. 043-222-0357, 223-0357 E.info@wuminartcenter.org



<손부남, 삶과 함께하는 예술 제2막>

                                                                                   

중견작가 손부남이 청주 우민아트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다. 우민아트센터의 넓은 전시장은 크게 좌우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오른쪽에는 2011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연작, 즉 열네 폭 캔버스를 연이은 대작을 중심으로 주로 캔버스 작품이 전시되었고, 왼쪽에는 여러 폐자재를 이용한 오브제 설치 작업이 전시되었다.
1983년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2015년 우민아트센터의 개인전까지 총 스물세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는 손부남의 30여년 화력에서 이번 전시는 그의 인생과 예술의 의미 깊은 분기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생과 예술의 제 2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번 개인전의 구성과 변화를 통해서 그간의 작가의 삶과 작업을 조망해보고 앞으로 펼쳐질 작업 제 2기를 점쳐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 될 것이다.
손부남은 1957년에 태어나 1983년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충북 청주에서 거주하며 1990년대 이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해온 지역의 대표적인 전업작가로 꼽힌다. 1980년대부터 괴산군 화양동 계곡에 작업실을 갖고 있었으며, 2000년대 말에는 충북 진천 공예마을에 인상적인 작업실을 새로이 마련한 바 있다. 이번 우민아트센터 전시장에는 그가 직접 짓고 꾸민 공예마을 내 작업실 전경이 대형 사진으로 소개되었는데, 그 옆 벽면에는 손부남의 30년 지기 이승희의 애정 어린 자필 헌사가 부착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이승희는 20대 후반에 손부남을 처음 만나 지금까지 작가의 가장 가까운 벗이자 동료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또한 치열한 예술세계를 꾸리고 있는 작가다. 그런 이승희가 칼칼한 필치로 되새기는 손부남의 삶과 예술에 대한 오마주는 아마도 그에 대한 가장 가까운 증언이자 가장 예리한 논평이 될 것이다. 진천 공예마을 내 손부남의 작업실은 구석구석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오롯이 반영하고 있는데, 그런 작업실 전경을 앞에 두고 작가 이승희가 절친의 삶과 예술에 경의를 표하며 새롭게 전개되는 작업에 진심어린 격려를 전하고 있다.
이승희가 네 개의 도해로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손부남의 작업의 단계는 그간 일관되게 깊이 파 들어간 갱도가 더 이상 팔 곳이 없는 정점을 이루었기에 이제는 그 저변을 넓히는 ‘또 다른 파 들어감’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 이룬 것을 모두 허물어내는 것을 전제로 하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낙천적인 성정의 손부남은 스스로 다시 파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 진단한다. 그리고 그 좋은 기운이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이승희는 확신한다.
30년 지기 벗이 간파한 손부남의 삶과 예술의 변화는 이번 우민아트센터의 전시장을 좌우로 구분하는 근거가 되었다. 60세를 앞두고 있는 손부남의 삶과 예술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의 극사실주의 화풍이고, 두 번째는 1990년대 초부터 가시화된 즉흥적인 선묘와 원시적 도상이 어우러진 소박한 회화 양식이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처음 구체화된 세 번째 단계는 여러 폐자재와 일상의 오브제들을 결합한 설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손부남이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 한국 미술계는 극사실주의 화풍이 유행이었다. 사진처럼 정밀한 사실적 재현으로 선배 세대의 추상에 도전하고 구상의 복원으로 사회적 현실과의 교감을 꾀했던 극사실주의 화풍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청년 미술가들 사이에서 가장 열띤 화두였다. 진천 공예마을 내 손부남의 작업실 입구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개인전을 개최하던 1980년대 초 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극사실주의 회화 한 점이 걸려있다. 1957년에 태어나 전후 한국 사회의 성장과 도약을 이끈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으로 시대적 조류의 전면에 있었던 손부남의 청년기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아마도 이 화풍을 지속했더라면 한국 현대미술사의 흐름에 기여한 대표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언급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손부남은 1983년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근 십여 년간 침묵을 지켰다. 능숙한 필치로 다작하며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여러 그룹전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활동경력을 보여주는 그의 이력에서 이례적으로 십년 가까운 공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첫 개인전 이후 십여 년의 공백을 깨고 1992년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할 무렵, 손부남의 화면은 즉흥적인 필치의 반(半)추상 회화로 바뀌어 있었다. 
극사실 회화의 사실적인 재현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던 손부남은 첫 개인전 이후 가족과 생활을 위한 의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한편, 새로운 예술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대학을 졸업한 후 30대 중반까지 손부남은 서예를 수련하고 원시미술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미학적 해법을 찾기 위해 부심했다. 1990년 초 변화된 화풍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1990년대 말에는 늦깎이로 대학원 과정에 진학하여 서양화 전공으로는 매우 이채롭게도 ?천전리 암각화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요컨대 청년기 첫 개인전 이후 십년간의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손부남의 화풍은 1980년대 초 극사실주의 회화에서 1990년대 초 즉흥적 필치의 반(半)추상 회화로 변모했으며, 1990년대 말을 전후해서는 새, 동물, 나무, 사람 등 단순화된 도상적 모티브가 더해지고 양식적으로는 우연적 선묘와 도톰한 재질감이 두드러진 물감 사용이 특징을 이루게 되었다. 단순한 평면적 도상의 모티브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해학적인 이야기 구조가 두드러진 ‘손부남 양식’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1990년대 초 처음 선보인 손부남 양식은 이후 매년 여러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능숙하고 활달한 필치의 선묘와 돌가루를 섞은 안료나 응축된 물감의 사용으로 부조적 돋을새김 기법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낙천적이고 유희적인 모티브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손부남 양식은 1990년대를 거치면서 무루 익어 2010년대 초까지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펼쳐졌다.
극사실 화풍에서 평면적 구성의 회화로의 변화는 서구 미술사의 흐름에서 보자면 양식적 퇴보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손부남 양식의 특징인 단순하게 도상화된 모티브들은 기호화된 형상으로 대상을 지시하는 상형문자나 원시 토템, 선사시대 동굴벽화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이에 비해 그가 만족하지 못했던 극사실주의 회화의 사실성은 재현적 묘사를 정점으로 삼는 서구 미술의 전통에서는 예술적 성취를 평가하는 척도였다. 따라서 30대 중반 손부남의 양식적 변화는 근대적 재현에서 원시적 도상으로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회화에는 단순화된 선묘와 측면의 인물상이 돋을새김의 실루엣으로 자주 등장한다. 큰 인물의 두상 앞에는 작게 축소된 인물이 마주하여 말을 걸기도 하고, 신화적 존재처럼 새의 머리를 가진 인물이 뒷짐을 지고 정원을 산책하기도 한다. 장식적 선묘들 사이로 이집트의 파피루스를 닮은 연꽃과 연밥이 솟아오르고 그 사이에서 개미처럼 도식화된 인물들이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한다. 개와 소, 말, 개구리 등 여러 동물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도상들 사이로 절집 안에서 결가부좌하고 명상에 잠긴 인물을 볼 수 있다. 지극히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회화 속에서 손부남의 인물은 자연의 삼라만상과 어울려 놀고, 웃고, 춤추고, 명상하고, 기쁘게 징을 두드려 깨달음을 소리쳐 알리기도 한다.
정밀한 사진적 재현의 극사실주의 양식을 버리고 손부남이 택한 장식적 도상의 평면적인 회화는 아동화 혹은 원시화로의 퇴행 속에서 오히려 무한한 해방감을 느끼는 듯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손부남의 이러한 태도는 모던한 혁신이 원시적 기원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에 주목한 아방가르드의 도전을 잇고 있다. 그는 서구적 회화의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림이라는 것이 그런 규범을 지키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회화 표면에 붓 자국을 남기지 않으면서 2차원 화면 속에 3차원의 공간감이나 부피감을 만들어내는 재현적 회화에서는 그다지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손부남은 크기와 비례를 무시한 단순한 도상들의 평면적인 배열과 돌가루를 섞은 안료와 물감의 농도에 따라 재질감을 달리하는 촉각적인 표면 위에서 회화의 실재를 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손부남의 그림은 보기보다 만지기에서 회화적 실체를 느끼고 시각적 재현보다 촉각적 새기기로 회화적 실체를 실천에 옮긴다. 그의 그림은 단순화된 도상적 모티브로 의미를 전달하고 형상을 묘사하던 선사시대 벽화의 양식을 계승했으며, 얕은 돋을새김 위에 채색을 가하는 고대 이집트 벽화의 부조적 양식을 닮았다. 그는 재현적 회화의 전통에 정면으로 역행하며 대상을 보는 방법, 혹은 대상을 읽는 방법,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경로를 따라 작업해 왔다. 


삶이 깊어질수록 일정한 규범에 도전하는 손부남의 의식은 더욱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지점을 향하는 것 같다. 그간의 손부남 양식이 회화 평면 위에 어떻게 이미지를 재현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2015년 우민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신작에서는 회화 그 자체에 대한 질문에 접근해있다. 무엇보다 회화 예술의 전제가 되는 바탕재가 캔버스에서 건축 폐자재 유로폼(euro form)으로 바뀌었으며, 화면을 장식하던 이미지가 대거 사라진 대신 기성의 오브제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여러 오브제를 조합하는 아상블라주 또는 조각적 설치의 양상이 두드러졌다. 앞선 양식에서는 매끈한 사실적 재현 대신 촉각적 재질감의 부조적 기법으로 회화 표면을 점검했다면, 이제는 회화라는 틀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2000년대 말 진천 공예마을 내에 새 작업실을 마련하는 과정에 구체화된 것으로 보인다. 손부남이 직접 설계하고 구석구석 인테리어를 마련하며, 정원의 조경을 위해 다년간 애쓴 새 작업실은 무척 인상적이다. 특히 무엇이든 직접 만들고 가꾸면서 그 의미를 발견하는 손부남의 작업 태도로 미루어볼 때, 그는 정해진 캔버스보다 매일같이 접하는 생활공간을 꾸미고 다듬는 일에서 더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탁월한 취향과 솜씨로 꾸며진 것은 익히 보아온 일이나, 손부남의 작업실은 좀 더 남다른 놀라움을 보여준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은 모던한 작업실 건물은 널찍한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좋은 구조를 따르고 있으나, 놀랍게도 내부의 복층 구조 하단에는 철거되는 절에서 수거한 대형 대들보를 그대로 옮겨와 사용했다. 단청이 선명한 옛 절집의 목재는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과 결합하여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바닥재 역시 철거되는 중학교 체육관 마룻바닥을 그대로 옮겨와 깔았으며, 사랑채로 사용하는 아담한 별채 또한 철거된 절의 목재를 옮겨와 되살린 것이다. 각별히 공들인 정원에는 커다란 바위와 멋스런 정원수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역시 폐기된 것을 가져오거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철거되는 절의 대웅전 대들보를 재활용한 모던한 콘크리트 건물이나, 그 옆에 위치한 작은 목조건물,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정원수와 바위는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버려진 것으로 손부남이 빼어난 안목과 손길로 되살려낸 것이다. 수명이 다한 것을 새롭게 하고 폐기된 것을 어루만지는 탁월한 솜씨로 생애 후반을 이어갈 작업실을 꾸린 것이다. 이렇게 새 작업실을 짓는 과정에 손부남은 그의 예술을 지탱하는 회화란 무엇인지 돌이켜 보고 그것이 일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 그는 예술을 일상과 구분하는 기본 전제인 캔버스 틀 자체를 폐기하는 대신 일상의 폐기물을 예술로 탈바꿈시키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2015년 우민아트센터의 개인전에 선보이는 손부남의 신작들은 작가가 그간 주워 모은 여러 오브제들과 작업실 건축 과정에 접하게 된 건축 폐자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손부남의 신작은 캔버스가 아닌 콘크리트 건물을 짓기 위한 거푸집의 일종인 유로폼을 회화적 또는 조각적 지지체로 사용하고 있다. 유로폼은 금속 프레임에 합판을 결합한 규격화된 틀로 주로 모던한 콘크리트 건물을 짓는데 사용된다. 기존의 합판 거푸집을 대체한 유로폼은 콘크리트를 타설했을 때 반죽의 압력을 잘 이기면서도 재사용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 건축자재이다. 손부남은 여러 번 사용하여 낡고 얼룩지고 더렵혀진 유로폼에 주목했다. 재사용이 가능한 유로폼도 어느 단계에서는 수명을 다하게 되는데, 손부남은 이렇게 폐기된 유로폼을 닦고 어루만져 회화적 혹은 조각적 지지체로 되살렸다. 유로폼 등 건축 폐자재와 일상 폐기물에서 수합한 작은 오브제들을 결합하면서 그간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도상적 모티브들이 현격하게 사라지고 그 대신 불타고 녹슬고 얼룩지고 일그러진 폐자재의 재질감과 그 위에 부착된 오브제의 구체적인 형상들이 작업의 전면에 부상했다.
지금까지 손부남의 회화가 밝은 색채의 물감을 여러 겹 더하는 구성의 과정을 따랐다면, 유로폼을 이용한 신작은 오히려 낡고 더럽혀진 폐자재를 씻고 닦고 털어내는 해체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망가지고 오염된 표면에서 부가된 것을 떼어내 원래 재료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하는데, 그러면 햇볕에 바래고 기름에 얼룩지고 물기에 녹슬고 불타 거뭇하고 바람에 뒤틀린 퇴락한 황폐함이 제 모습을 드러난다. 그것은 어떠한 재료나 솜씨로도 만들 수 없는 각별한 것인데, 오랜 시간의 흐름과 세월의 더께만이 만들 수 있는 아련한 폐허의 정취로 낭만적 감흥을 일깨운다. 닳고 낡아 퇴색한 것은 그것이 견뎌온 시간만큼이나 짙은 어두움과 중층의 재질감을 삽상한 회고의 감회로 켜켜이 드러내 보인다.
표면의 재질감은 이전부터 손부남이 중요시하던 것이나, 회화의 재질감이 물감을 여러 번 쌓아 올려 만드는 것이라면, 신작의 것은 묵은 재료가 감내해온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도록 닦고 쓸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닦고 어루만져 낡고 오래된 것이 말간 아름다움을 드러내면, 비로소 다른 오브제와 결합하여 새로운 설치로 조합될 준비를 마친다. 쓰다 버린 활자판,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작은 철동상, 녹슨 기계부품, 망가진 장난감, 뚜껑을 잃은 목조장 등은 유로폼과 결합하여 의외의 조형미를 뽐내며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태생과 출처가 달랐던 물건들은 손부남의 어루만지는 손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원래의 목적과 용도를 넘어 다른 이질적인 물건들과 결합하여 임시변통이지만 탁월한 결과를 자아내는 브리콜라주(bricolage)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세월에 찌들어 낡고 해진 것, 더 이상 쓸모없어 폐기처분된 것을 훌륭하게 되살리는 심미안은 이미 일상 속에서 손부남의 특기이자 장기였는데, 바로 그 생활 속 체험이 신작의 핵심적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회화의 경계를 넘어섰으며, 그간 삶과 회화, 일상과 예술을 구분 짓던 경계는 예술은 일상에서 비롯되며 회화 역시 실제적인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깨달음 속에서 그 효력을 잃고 만다. 작업실을 짓기 십여 년 전에 수거하여 보관하던 옛 절의 대들보는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훌륭하게 되살아났으며, 그의 손을 거치면 낡은 철망과 하찮은 스티로폼 도시락도 매력적인 작품으로 탈바꿈 한다.


지난 이십여 년 활기차게 작업하던 중견작가 손부남은 어느덧 60세 회갑을 앞두고 있다. 삶의 큰 굽이를 마감하고 인생의 노년 혹은 작업의 제 2기를 앞두고 있는 작가의 감회는 특별할 것인데, 젊음과 열정이 가신 그 자리에 손부남은 버려진 것이 버려진 것에 그치지 않고 황폐한 것이 황폐한 것에 다하지 않음을 보여주는데 새로운 작업의 모토를 발견한 것 같다. 철거되는 절의 목재는 모던한 콘크리트 건물의 대들보로 멋지게 되살아났으며, 더 이상 재활용도 할 수 없는 폐건축재 유로폼은 손부남의 손에서 회화적 틀로 조각적 지지대로, 오디오 장치의 기둥으로 새 생명을 부여받았다. 폐기물 더미에서 수거한 낡고 녹슨 오브제들은 유로폼의 표면 위에서 혹은 유로폼을 지지대로 삼아 조각적 형상으로 멋지게 부활했다.
손부남은 회화적 규범에서 벗어나 ‘다르게 그리기’보다 눈밖에 벗어난 것을 다시보고 버려진 것을 어루만져 되살리는 방법으로 작업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인생의 큰 변곡점을 거치고 있는 그의 삶과 예술에서 많은 회한과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많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밝고 윤기 흐르는 새 것을 만들기보다 퇴락하여 황폐하지만 오래 묵어 낡고 퇴색한 것의 아름다움, 세월을 되새기는 손길 속에 깊은 어두움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고 있다. 낙천적이고 부지런한 손부남의 기질은 이제 폐자재와 버려진 오브제를 어루만져 되살리는 과정에서 정해진 예술의 규범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기쁨을 누리고 있다. 탁월한 심미안으로 선택되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그의 오브제 설치 앞에서 우리는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그의 창작에 대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이 역시 예술과 창조에 대한 기존의 규범에 동조하기 보다는 그 틀을 깨고 역행하는 발상에 의거한 실천적 해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0대의 문턱에서 손부남은 예술이란 일상과 동떨어진 별도의 형이상학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 속에서, 일상의 폐기물 속에서, 자전적인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위와 실천을 통해서 일구어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업 제2기에서 젊음의 열기는 가셨을 것이나, 작업하는 즐거움과 창작하는 기쁨은 여전할 것이며, 오히려 경험적 배포와 낙천적 기질은 더욱 견고해졌을 것이다. 새롭게 가시화된 손부남의 제2양식이 이후 20여년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것을 그가 나누어준 좋은 기운을 느끼며 함께 지켜볼 일이다.

글.권영진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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